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훈 중위 사건 (문단 편집) === 군 수사 결과 발표 === 약 2개월 후인 1998년 4월 28일 사건을 조사한 한미합동수사팀은 '이유를 알 수 없는 [[자살]]'이라는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. 당시 소대원들의 알리바이가 모두 확인되었으며 그들 중 살해 동기를 가진 이를 찾을 수 없었고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자살이 확실하다는 그들의 발표는 다시 말해 '타살의 증거가 없으므로 자살로 판정'이라는 요지의 결론이었다. 이는 수사과학적으로 평범한 판단으로 자살의 경우 자살했다는 직접적인 물증이 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에[* 그러므로 액사(=縊死 : 목 매 죽음.)나 추락사 등 평범한 자살자도 수사하는 것이다.] 타살의 증거가 없을 경우 자살로 추정하는 것이 관례지만 이 사건에서는 타살로 의심될 만한 정황과 증거가 후에 명백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[[조작|군 당국에선 성급하게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.]] 그러나 수사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른 김 중위가 자살 시도를 할 때 취했을 부자연스러운 격발 자세와 총을 잡고 격발했을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었고 유족은 이에 반발해 재수사를 촉구했다. 이 시점에서 유가족과 인권단체, 언론에서 제기한 의문점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. 이후 부실 수사를 문제 삼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[[대한민국 국방부|국방부]]는 1998년 12월 육군 중장 양인목 [[장군]][* 예비역 중장(육사 22기)이며 [[베트남 전쟁]]에 참전했고 [[제52보병사단]]장, [[제7기동군단]]장, [[국군의 날]] 행사 제병지휘관을 역임한 후 국방부 특조단장으로 임명됐다. 1999년에 6.25전쟁 제50주년 사업단장을 역임했으며 중장으로 예편했고 2011년에 사망했다.]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합동조사단을 조직해서 재수사를 결정했다. 조사단은 JSA 경비소대원 재소환, 거짓말 탐지기, 법의학자 공개 토론회를 거쳐서 1999년 4월 [[기만|국방부는 다시 한 번 자살로 발표했다]]. 법의학자 공개토론회에서 참석한 8명의 법의학자 가운데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 [[박사]]를 제외한 전원이 자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